피말리는 건설ㆍ조선업체 재무팀장들 :: 2009/01/08 08:39

피말리는 건설ㆍ조선업체 재무팀장들
은행 직원 만나기위해 상가로 병원으로 발품
"C등급만 받아도 다행스러운 상황일 정도"
은행 관계자 "평가대상업체 명함만 수십장"

"하루빨리 구조조정 대상이 가려져야지, 신규 차입도 어렵고 정말 피가 마릅니다."

중견 건설사 재무담당 임원 A씨. 건설업체 퇴출이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그는 요즘 속이 바짝바짝 타 들어간다. 회사 생존이 걸려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이기 때문이다. 외환위기(IMF) 때도 이 회사에서 근무했던 그는 그때보다 지금이 10배는 힘든 것 같다고 했다.

최근 은행연합회에서 내놓은 구조조정 평가 기준으로 회사 측이 시뮬레이션을 해본 결과 `안정권`이라고 평가를 내렸지만 은행 평가는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조바심을 내고 있다. 등급을 매기는 데 비재무적 항목 비율이 60%를 차지하다 보니 매일 아침 주채권은행에 들러 분양률, 자구계획, 우발채무 변동상황 등을 설명하고 있다.

A씨는 오전 7시에 출근해 회사 자금상황을 파악한 후 10시쯤 외근을 나간다. 은행, 증권사, 자산운용사 등 자금 조달이 가능한 곳이라면 어디든 방문한다. 하지만 시기가 모호하다 보니 발바닥이 닳도록 뛰어다녀도 별 신통한 성과를 얻기가 힘들다. 신용평가사에도 들러 앞으로 자금조달 계획을 설명하며 신용등급 하향을 막아보려 애쓴다. 신규 차입이나 자금 연장에 대해 읍소하면서 돌아다니다 회사에 돌아오면 밤 9~10시가 훌쩍 넘어버리기 일쑤다.

하지만 금융회사에 들러 신규 차입 의사를 타진하면 "대주단 평가가 끝나고 보자"는 냉정한 답변이 돌아온다. 심지어 아파트를 분양받은 사람들도 회사 등급 나오는 것을 보고 분양대금을 내겠다고 버티기까지 한다. 분양대금 회수도 쉽지 않고 자금 조달도 안 되다 보니 회사 살림 꾸리기는 더 빡빡해졌다. 신생 조선소인 A조선소 사장도 요즘 속이 까맣게 타 들어간다. 꼼꼼히 구조조정 기준을 바탕으로 점검을 해보니 불안감은 더욱 커졌다. 구조조정 기준에 대부분이 해당하기 때문이다. 선박 인도 경험도 없고, 선박 건조 설비도 완료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살생부`에 오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기준대로라면 C등급을 받는 것만으로 다행스러운 처지다.

A조선소 사장은 주거래은행 등 채권단에 백방으로 문의를 해봤지만 시원스러운 답변을 얻지 못했다. "아직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으니 기다리라"는 말 외에는 어떤 것도 들을 수가 없다. 심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에 더욱 괴롭다. A조선소 사장은 "중소 조선업체들은 대부분 비슷한 처지일 것"이라며 "가만히 앉아서 생사를 기다려야 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라고 말했다.

이미 워크아웃에 들어간 C&중공업은 더 절박하다. 임병석 회장 등 임원진은 채권단 관계자들을 만나기 위해 상가도 마다하지 않고 찾아 다닌다. 임 회장을 비롯한 전 임원진이 주채권은행인 우리은행 등 채권단을 직접 찾아가 원활한 워크아웃 진행을 호소하고 있다. C&중공업은 이번 111개사 평가 대상에 포함돼 긍정적인 결과를 얻으면 극적인 자금 지원이 가능하다. 하지만 상황은 그리 밝지 않다.

한편 건설ㆍ조선업체 직원들 방문에 시중은행들도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개별 사정을 들어보면 모두 도와주고 싶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얼마 전 한 모임에 나갔더니 어떻게 알고 왔는지 평가 대상 기업 직원들이 모두 찾아와 명함을 안기고 가더라"며 "그날 받은 명함만 수십 장인데 원하는 대로 지원하기 어려워 우리도 안타깝다"고 말했다.

[심윤희 기자 / 박유연 기자 / 박종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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