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스크랩] 이 땅에 태어나서 - 정주영 :: 2007/10/03 18:09

쫌 길지만 한번쯤 읽어보세요. 내 삶이 너무나도 부끄러워 지는 이야기 입니다... 정말 가슴이 찡합니다.

* 행복할 수 있는 조건

나는 우선 건강하기만 하면, 행복할 수 있는 첫째 조건은 갖춘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운 속에 크게 발전하고, 나쁜 운도 탈 없이 잘 넘겨 좋은 운으로 바꾸면서 살려면 우선 건강해야 한다. 건강을 잃고는 긍정적인 사고를 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게 가지고, 담백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살아보라는 권유를 하고 싶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 주변의 사람들보다 더 나은 발전을 할 수 도 있고 또 뒤떨어질 수도 있다. 항상 남보다 내가 더 나아야 한다는 오만을 가지면 나보다 나은 사람에 대한 질투나 시기 때문에 마음 편할 날이 없으니 행복한 삶과는 거리가 멀다.

사회 각 분야에서 열심히 훌륭하게 자기 일을 하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솔직하게 찬사를 보낼 수 있는 ‘잘난 사람’ 들이 많아져야 우리도 ‘잘난 나라’로 발전할 수가 있다. 다른 사람을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고, 자신도 크게 발전할 수 있는 소질을 가진 사람이다.

세 번째로, 나는 보다 나은 삶, 보다 나은 인간, 보다 나은 직장인, 보다 나은 발전에 대해서 항상 향상심을 갖고 ‘공부하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육받지 못했어도 날마다 열심히 생각하며 사는 사람은 교육은 받았지만 아무 생각 없이 하루하루를 사는 사람이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는 법이다. 생각하는 사람과 생각 없는 사람은 일을 해보면 교육과 상관없이 하늘과 땅 차이가 난다.

나는 소학교 졸업밖에는 못한 사람이지만, 평생 ‘좋은 책 찾아 일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첫째가는 스승이 나의 부모님이셨다면 둘째 스승은 책읽기였다고 할 수 있다. 하루하루가 모여서 일생이 되는 것인데, 사람은 흔히 자기 일생은 중요하게 생각하면서도 하루의 중요성은 망각하고 산다.

네 번째로 말하고 싶은 것은 ‘有志者事竟成 유지자사경성’이라는 말이다. ‘뜻이 강하고 굳은 사람은 어떤 난관에 봉착해도 기어코 자신이 마음먹었던 일을 성취하고야 만다.’는 뜻이다. 편안하고 쉽게 저절로 디는 일이란 별로 없다. 누구에게나 몇 차례의 호된 시련은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럴 때에도 좌절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나한테 더 큰 일을 감당하게 하려고 주어진 시련이다.’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틀림없는 사실은 바람이 나무의 뿌리를 더 깊고 단단히 내리게 만드는 것처럼 시련은 우리를 보다 굳세고 현명하게 성장시킨다. 고령교 복구공사의 시련이 그 좋은 예가 된다.



 
* 성공적인 삶

시간은 한순간도 정지라는 것이 없다.
쉬임 없이 흘러간다. 일 초가 모여 일 분이 되고,
분이 모여 시간이, 시간이 모여 하루가 지나간다.
하루가 쌓여 일 년이 가고 십 년이 가고 백 년, 천 년이 간다.
시간은 지나가버리면 그만, 잡을 수도 되돌릴 수도 없는 것이다.
누구나 적당히 게으른 재미를 보고 싶고 편한 즐거움을 갖고 싶다.

그러나 나는 그 ‘적당히 적당히’라는 적당주의로
각자 자신에게 허락된 시간을 귀중한 줄 모른 채
헛되이 낭비하는 것보다 멍청한 짓은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 인간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한 생애 동안,
우리는 역사에 남을 훌륭한 정치가가 될 수도 있고,
학자가 될 수도 있고, 혁명가가 될 수도 있고,
문학가나 음악가, 화가, 그리고 기업가가 될 수도 있다.
지금 그렇게 살고 떠나서 우리의 존경을 받는
많은 인물들처럼 말이다. 그 사람들이라고 두 생애,
세 생애 동안 이룬 일들이 아니다. 한 생애에 그만한 일들을 해놓고 떠난 것이다. 개인의 소질이나 능력, 환경, 우수성의 차이로 물론 누구나 다 한 생애에 그만한 일들을 해낼 수는 없다. 그러나 주어진 시간을 적당히 낭비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는 삶을 산다면, 누구나 나름대로의 분야에서 나름대로의 성과를 거두면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그 삶은 성공적인 삶인 것이다.


*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한테 가능, 불가능을 물었으니, 불가능이라는 대답이 온 것은 당연하다.

울산조선소도 ‘가능하다’는 긍정적인 사고에서 출발해서 실현된 것이다. 영국에 가서 울산에 50만t급 도크를 파서 30만t급, 50만t급 배를 만들어 팔아서 갚을 테니까 돈을 좀 빌려달라고 했더니, 그들 대답은,
“당신들은 그렇게 큰 배를 만들어본 경험도 없고, 기술자도 없어서 안 된다.”
였다. 나는 그래도 우리는 만들 수 있다고 버텼다. 내가 막무가내로 버티니까 그들이 대사관을 통해서 우리 나라의 대한조선공사에 조회를 했다. 조회에 대한 대한조선공사의 대답은 ‘불가능’이었다.

똑같은 이유로 이미 프랑스와 스위스 은행에서 차관 거절을 당했던 터였기 때문에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영국에서 돈을 빌려야 했다. 내가 말했다.

“모 든 일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만이 해낼 수가 있다. 만약 우리 나라의 조선공사나 다른 선박업자가 이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면 나보다 그들이 먼저 당신들에게 와서 돈을 빌리자고 했을 것이다. 그들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안 온 것이고, 나는 가능하다고 생각하니까 온 것이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한테 가능, 불가능을 물었으니, 불가능이라는 대답이 온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나는 절대로 가능하다. 반드시 해내겠다. 서류 검토를 다시 한 번 해다오.”

그들이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결국 그들의 차관 주선으로 울산조선소가 현실화된 것이다.

하 루하루 발전하지 않는 삶은 의미가 없다. 우리는 발전하기 위해서 사는 것이다. 태어나는 자리나 환경, 조건이 똑같을 수는 없다. 그러나 한 가지 똑같은 것이 있다. 누구의 미래든 당신의 발전을 위해 준비되어 있다는 점이다. 발전을 위해 준비되어 있는 미래를 무의미한 것으로 만드는 건 순전히 자기 자신의 책임이다. 아무리 현재가 힘들고 고생스러워도 생각이 긍정적이면 행복을 느낄 일은 얼마든지 있다.

실패한 사람, 불행한 사람을 한번 눈여겨보기 바란다. 그들은 모든 일과 모든 다른 사람들이 언제나 못마땅하고 자신이 처한 현재의 상황이 다 남의 탓이라고 투덜거리며 화내고, 된다는 일은 없고 다 안 된다는 일뿐이며, 세상에 대해, 인간에 대해 미움과 의심에 가득 찬 얼굴로 사는 사람이다. 부정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은 세상에 대한 불평과 증오로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느라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 발휘를 스스로 포기하고 좌절과 실패만을 되풀이한다.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사고는 자신의 발전을 가로막는 거대한 닫힌 철문이며, 그 철문 안에 스스로를 가둔 사람에게 발전이란 있을 수 없다. 그런 사람은 자신은 물론 주위의 사람들까지 힘들게 만드는 낙오자, 실패자로 아까운 세월을 허비하다가 참 잘못 산 일생으로 한 생애를 마감할 수밖에 없다.


* 부지런하기를 권한다.
 
새 도 부지런해야 좋은 먹이를 먹는다. 비슷한 수명을 가지고 비슷한 일생을 사는 동안 어떤 이는 남보다 열 배 스무 배 일하고 어떤 이는 그 몇십 분의 일, 몇백 분의 일도 못하고 생을 마친다. 열 배 일하는 사람이 열 배 피곤해야 정한 이치인데, 피곤해하고 권태로워하는 것은 오히려 게으름으로 허송 세월 하는 이들인 것을 보면, 인간은 일을 해야 하고 일이야말로 신이 주신 축복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루 부지런하면 하룻밤을 편히 잠들 수 있고 한 달 부지런하면 생활의 향상을 볼 수가 있고, 1년, 2년, 10년…… 평생을 부지런하게 생활하면 누구나 자타가 공인하는 크나큰 발전을 볼 수 있다. 부지런만 하면 게으른 이보다 몇십 배의 일을 해낼 수 있고, 따라서 몇백 배 충실한 삶을 살 수 있다. 몇십 배 많은 일을 한다는 것은 게으른 몇십 명, 몇백 명 몫의 인생을 산다는 이야기가 된다.

허송 세월이 인생의 목표가 아니거든 첫째 부지런하기를 권한다. 부지런해야 많이 움직이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노력해서 큰 발전을 이룰 수 있다. 부지런함은 자기 인생에 대한 성실성이므로 나는 부지런하지 않은 사람은 일단 신용하지 않는다. 일상 생활에서부터, 아주 작은 일에서부터 바른 생각으로 성실하게 자신의 인생을 운영해 나가다 보면 신용은 저절로 싹이 터 자라기 시작해서 부쩍부쩍 크고 있을 것이고, 그러다 보면 어느 날엔가는 말하는 대로 의심 없이 믿어주는 커다란 신용을 갖게 될 것이다. 이것은 개인과 기업, 국가 모두에 해당된다.

신용은 나무처럼 자라는 것이다.

또한 신용이란 명예스러운 것이다.


* 긍정적인 사고가 행복을 부른다

한 창 잘먹고 자랄 나이에 밥보다는 죽을 더 많이 먹으면서, 그것도 점심은 다반사로 굶어가면서 미래가 보이지 않는 농사일을 할 때도, 신통하게도 나는 내 처지가 불행하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가난한 농촌 생활이 불행해서, 상급 학교에 진학해 선생님이 되고 싶은데 농부로 살아야 하는 것이 비참해서 침울했던 기억도 없다. 우리는 왜 이렇게 가난하며 나는 왜 이렇게 척박한 농촌의 가난한 부모 밑에서 태어나 이 고생을 하고 살아야 할까 하고 비관한 적도 없다.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나는 매사를 나쁜 쪽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좋은 쪽으로 생각하며 느끼고, 그 좋은 면을 행복으로 누릴 수 있는 소질을 타고난 사람인 것 같다.

열 살 무렵부터 아버님을 따라 뜨거운 논밭으로 따라다니며 뙤약볕 아래서 하루 종일 허리 펼 틈도 없이 일을 하면서도 나는 내 처지에 대해서 불평을 품지도 게으름을 피우지도 않았다. 그러다 아버님이 잠깐 쉬자고 하셔서 나무 그늘로 들어가 쉴 때면, 그 시원한 바람 속에서의 짧은 휴식이 극락처럼 행복했다. 피곤한 일 뒤에 단잠을 자고 일어날 때의 거뜬한 기분이 좋았고, 밥맛이 언제나 꿀맛이었던 것도 행복이었다.

나뭇짐 지고 나무 팔러 시장에 나가면 목판에 즐비한 떡이며 국수며 그런 것들이 먹고 싶어 언제나 주려 있는 배가 요란하게 꾸르륵거렸는데, 그걸 눈 딱 감고 모른 척하는 것이 참 괴롭기는 했다. 그래도 나무 판 돈 중에서 아버님이 허락한 딱 1전으로 눈깔사탕 2개를 사서 천천히 녹여 먹으며 집으로 돌아갈 때의 그 단맛과 시간은 참으로 행복했다. 여름 내내 맨발로 지내다가 추석 명절에나 얻어 신을 수 있는 대륙고무신 한 켤레가 그렇게 감사하고 행복할 수가 없었다.

한 낮의 뜨거운 폭염이 스러지고 난 시원한 저녁에 들마루 아래 쑥대로 모깃불을 놓고 식구들이 둘러앉아 강냉이를 먹을 때면, 언제나 무뚝뚝하신 아버님도 쾌활하신 어머님의 우스갯소리에 더러 웃으시기도 했다. 우리 형제들한테는 엄하기만 하신 아버님이 웃으시면 그것이 바로 더할 수 없는 행복이었다. 아버님이 웃으시면 행복했다.

한겨울을 아버님은 대부분 새끼 꼬기, 짚신 삼기로 보내셨는데 손이 아파서 새끼 꼬기가 싫다는 나를 웬일인지 그대로 두셨다. 그래서 아침저녁으로 쇠여물을 끓여주는 것만 책임지고는 겨울이면 실컷, 아주 행복하게 실컷 놀았다. 강산처럼 눈이 내린 겨울 중간에 마을 사람들이 단체 사냥에서 운 좋게 노루나 산돼지를 잡으면 동네 잔치가 또 그토록 푸짐하고 즐거울 수가 없었다.

아버님 어머님이 계시고 형제, 친구들이 있는 고향에서 나는 노력에 비해 소득이 시원찮은 농사가 불만스러웠을 뿐 행복했다. 어쨌든 도회지로 나가면 농사가 아닌 다른 삶, 보다 나은 벌이로 부모님과 형제들을 책임질 수 있을 것 같은 막연하지만 강렬한 믿음과 욕구 때문에 고향을 뛰쳐나온 것이지 불행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공부도 제대로 못했고 의지할 곳도 없고 친구도 별로 없고 몸은 고된 막노동을 하면서도 나는 고향을 떠난 것을 후회하거나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해 불평을 품어본 일이 없다. 빈대에 뜯겨가며 노동자 합숙소에서 자며 부두 노동을 할 때도, 고려대학 건축 공사장에서 돌을 져 나르면서도, 나는 꾀를 부리지 않고 열심히 그 일을 했다.

그러는 한편 언제나 보다 나은 일자리를 찾느라 바빴지 한번도 좌절감이나 실망을 느껴본 적은 없었다.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타고난 건강에 부모님으로부터 배운 근면함만 있으면, 내일은 분명 오늘보다는 발전할 것이고, 모레는 분명 내일보다 한걸음 더 발전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언제나 행복했고 활기찼다.

막노동에서 풍전엿공장으로 고정된 직장을 잡게 된 것이 한걸음 나아간 발전이었고, 엿공장에서 쌀가게로 직장을 옮긴 것이 또 한걸음의 발전이었다. 엿공장에 취직이 됐을 때에도 기뻤지만 쌀가게에 들어갔을 때는 정말 행복했다. 전차삯 5전을 아끼느라 구두에 징을 박아 신고 출퇴근을 하면서도 신이 났고, 생활이 조금 나아져 5전짜리 음식 대신 10전짜리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됐을 때의 흐뭇함도 나는 아직 기억한다.

주인 에게 인정받아 쌀 배달보다 나은 일을 하게 됐을 때도 몹시 기뻤고, 전차를 타도 될 형편이 되고 산꼭대기 하꼬방 셋집에서 조금 나은 셋집으로 셋집을 여러 번 옮겨다니다 현저동 산꼭대기에 초가집 한 채를 내 집으로 장만했을 때는 안 먹어도 배가 부를 것처럼 행복했다.

인생 80여 년 동안 물론 잠깐씩 어렵고 답답한 때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그리고 열패감과 모욕감을 이를 악물고 견뎌내어야 했던 몇 대목도 있었지만, 그 몇몇 부분을 빼면, 나는 내 인생의 90%를 항상 행복한 마음으로 활기차게 잘살아온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을 잘사는 사람이란 어떤 사람인가?
잘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일단 재산 많은 부자면 행복한 사람인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환경에서 태어나 어떤 위치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든지, 최선을 다해 자기한테 맡겨진 일을 전심전력으로 이루어내며 현재를 충실히 살 줄 아는 사람은 우선 행복한 사람이다.

현 재에 충실하면서 자신의 보다 나은 미래에 대한 꿈으로 언제나 일하는 것이 즐겁고 작은 일에도 행복하게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은 누구든 나름대로 성공을 거둘 것이다. 그런 사람이 인생을 잘사는 사람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중급 기술자든 고급 기술자든, 중국집 배달원이든, 학생이든, 관리든 마찬가지다.

우리는 성장하면서 사회를 알고 배우고 체득해가면서 자기 형성을 하는데, 사물을 보는 관점이나 사고의 방향, 마음 자세에 따라서 일생이 크게 달라진다.

불 구로 태어나서도 맑고 밝은 마음으로 존경을 받아가며 사는 이 사회의 중요한 일꾼도 있는가 하면, 건강한 사지육신으로도 인생을 부정적으로만 보면서 쓸모 없는 인간으로 일생을 사는 이도 있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 긍정적인 사고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인류의 모든 훌륭한 발전은 긍정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에 의해 주도되어왔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 나는 사람들이 나를 평가하는 척도를 돈으로 삼지 말기를 바란다. 
 
나라는 사람은, 회사에서는 종이 한 장도 앞뒷면으로 쓰게 하고, 공사 현장에서 자갈 몇 개가 허투루 버려져 있어도 눈물이 빠지게 나무라면서, 어떻게 성금은 뭉턱뭉턱 내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하는 이들이 꽤 있는 것으로 안다. 나는, 내가 돈이 좀 있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이런저런 오해를 받고, 이런저런 말을 듣고 하는 게 부담스럽다.
체육회 일만 해도 그렇다. 체육에는 문외한이면서 어찌어찌 하여 체육회장직을 맡게 되었을 때 주위에서는 내가 무턱대고 돈을 펑펑 쓸 것으로 생각하고 기대했었다. 그것은 나라는 사람을 잘 모르는 데서 생긴 잘못된 기대였다. 그 자리가 욕심나 돈으로 자리를 사서 들어가 앉았던 사람이 아닌 바에야, 능력과 진실로 최선을 다해서 국가 체육 발전에 기여하는 것으로 직분을 다해야지 돈을 왜 쓰나? 돈이 많은 사람이니까 돈을 써줄 것이라는 기대로 떠맡긴 자리였다면, 그것은 그 자리와 나를 함께 모욕하는 짓이었다.

체육회장 자리는 명예직이며 시간을 바쳐 봉사하는 자리이다. 인격과 능력 때문이 아니라 돈으로 선택됐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무슨 일이 있었어도 그 자리는 맡지 않았다. 짧은 재직 기간 동안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구설, 시시비비 속에서도 타고난 성격대로 열과 성을 다해 일했으나, 줄곧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몸에 실리지 않는 일은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도 절실하게 했었다. 어떤 이는 공공 기관에 나가서 나 보라는 듯 큰돈을 쓰고, 어떤 이는 고양이만큼 쓰고 호랑이만큼 쓴 것처럼 과장해서 으스대기도 하나, 나는 돈으로 생색내고 돈으로 자랑 삼는 사람의 인격은 보잘것이 없다고 치부하는 사람이다. 돈이란 큰돈도 작은 돈도 드러나지 않게 쓰는 것이 원칙이다. 예를 들어, 음식점에서 봉사료를 줄 때도 다른 사람 모르게 주는 것이 예의이지, 여자 이마에 침 발라 돈을 붙여주는 따위의 행동은, 한 인간이 한 인간을 근본적으로 멸시하는 한심한 작태이다.

신 문 지상에 개인 소득 랭킹 1위다 어쩌다 하는 발표가 있을 때마다 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죄책감을 느낀다. 저 사람은 그 많은 돈을 어디에 쓸 것인가 하겠지만 그러나 실상 나의 생활은 중산층과 비슷한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중산층 개념은 우리 직원들과 엇비슷하다는 뜻이다. 집은 대지 3백 평에 건평이 1백 평 가량이라 다소 크지만, 자동차도 스텔라, 그라나다, 쏘나타, 그랜저를 타다가 지금은 다이너스티를 타고 있는데, 평생 일도 꽤 많이 했고 나이도 있으니 탈 만하다 생각하면서도, 어떤 때는 너무 좋은 차를 타는 것이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다소 면구스럽다. 하루 세 끼 식사도 접대가 없는 이상 평범한 사람들과 큰 차이 없이 먹는다. 보약이라는 것도 별로 믿지를 않아 먹기 싫어하고, 가끔 인삼차를 마시기는 하나 보약으로가 아니라 차로 마시는 것이다. 돈이 남보다 많다고 해서 특별하게 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사람은 의식주를 얼마나 잘 갖추고, 얼마나 잘 누리고 사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한테 얼마나 좋은 영향을 끼치면서 사느냐가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와 같이 일하고 있는 직원들이 지금 21만 명쯤 된다. 우리 식의 사고 방식으로, 내가 그 많은 사람들을 벌어먹여 살리고 있다는 말을 하는 이도 있지만,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반대로 그들이 나를 호강시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은 피차 도와가면서 사는 것이지 어떤 사람이 어떤 사람을 먹여 살린다는 생각은 옳지 못하다. 흔히들 ‘내가 데리고 있는 사람’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고 같은 직장에서 ‘누가 누구를 키웠다’는 말들도 쉽게 하는데, 그것은 어리석은 객기이며 보기 싫은 오만이다.

우리는 다 같이 평등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위대한 사회는 평등 의식 위에 세워지는 법이다. 일을 하기 위해서 상하 질서가 있는 것이지, 직장의 상하가 인격의 상하는 결코 아니다. 직책이 높다고 거드름을 피울 것도, 낮다고 위축될 것도 없다. 세상 사람들 중 혹자는 나를 선망하기도 하고 혹자는 싫어하기도 할 것이다. 다행히 나를 선망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이렇다 할 학력도 없이 성공한 사람이 된 나로 인해 자신도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어서가 아닌가 생각한다. 큰 재산과 좋은 학벌이 있어야만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가난하고 학벌 없이도 큰 사업을 하고 있는 나를 현재의 어려운 여건 속에서 큰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이 ‘견본’으로 삼아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매진해서 크게 발전하기를 바란다.

남들은 내가 부자라고 부러워도 하고 질투도 하지만, 실상 나 자신은 부자라는 감각을 느끼지 못하며 산다. ‘내 재산’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쌀가게를 할 때까지였다. 차츰 일을 키우면서, 기업이 성장하면서는 일이 좋아 끊임없이 일을 만들어 나갔을 뿐, 내 재산을 늘리기 위해서나, 대한민국에서 첫째가는 부자가 되기 위해서라는 의식은 진실로 티끌만큼도 없었다.

나는 회사에 돈이 얼마나 있는지 상관하지 않는다. 내 호주머니에 들어 있는 돈만이 내 돈이고 집으로 타가는 생활비만이 내 돈이라고 생각하며, 돈이란 자신의 의식주를 해결하는 그 이상의 것은 자기의 소유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은 ‘현대’의 성장을 더 큰 부자가 되려는 나의 욕심으로 볼지도 모르지만, 내 의식 속에 ‘부자’라는 단어는 없다.

인간은 다 비슷한 조건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도 어떤 이는 잘되고 어떤 이는 잘 안 되기도 하는데, 대개의 사람들은 비슷한 출발에서, 과정의 능력과 노력에 차이가 있었다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결과의 불균형에 대해서만 불평을 품는다. 자유 기업 사회에서 그 불균형은 정부도, 제삼자 누구도 해결할 수가 없다. 그 불균형에 대한 불평 불만에서 공산주의식 체제에 경도되는 젊은이들도 생기는데, 그들은 공산주의 사회는 다 같이 못사는 사회라고 생각하지는 않고, 다 같이 잘사는 사회라고만 생각하기 쉽다. 공산주의 체제가 다 같이 못사는 사회라는 것은 70년 또는 50년씩 공산주의를 해온 소련과 중국이 현재 증명하고 있다.

더구나 개개인의 자유가 구속되고 타의에 의해 직업이 주어지고, 사는 곳이 고정되는 그 사회에서 사는 것만큼 큰 불행은 없다. 때문에 다소의 불균형이 문제가 되더라도 기본적인 자유가 보장된 민주주의 체제가 나는 이 지구상에서 가장 좋은 제도라고 생각한다.

대 기업에 대해서는 진위와 상관없이 덮어놓고 정경 유착으로 몰아붙이고, 특히 우리 ‘현대’를 공화당 정권의 비호 아래 크게 성장한 것으로 안다. 그러나 ‘현대’는 창립 이후 지금까지 어느 정권, 어떤 불경기, 어떤 악조건 아래서도 매년 30%씩, 그리고 5공, 6공에서도 최소한 20% 이상은 성장해왔다. 1977년, 정부가 법인세와 방위세, 지방세, 종합 소득세 등 기업의 세금을 통합한 세법 통과로 이익의 70%를 세금으로 거두어가 기업이 급격히 냉각되었을 때도 ‘현대’는 끄떡없었다.

불굴의 노력을 경주한 결과였다.

기 업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은 기업인이지만, 기업의 이익을 거두어가는 곳은 정부라는 것을 국민들이 잊지 말아주기 바란다. 우리는 세액을 뺀 나머지 30%를 다시 고용 증대와 재투자에 쓴다. 간단히 말하자면 기업이란, 국가 살림에 쓰이는 세금의 창출에 큰 몫으로 기여하면서, 보다 발전된 국가의 미래와 보다 풍요로운 국민 생활을 보람으로 알고 일하는 집합체이지, 어느 개인의 부를 증식시키기 위해, 혹은 폼내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사람들이 나를 평가하는 척도를 돈으로 삼지 말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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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2007/11/24 15:32 | PERMALINK | EDIT/DEL | REPLY

    정말 배울점이 많은 글이당..
    들고갈께 ^^

    • 뺑찬 | 2007/11/27 00:42 | PERMALINK | EDIT/DEL

      엉 이거 쵝오 -_-)=b
      긴 글 읽어본 사람도 대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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