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속보지표 일제히 빨간불 :: 2009/01/09 09:03

경기 속보지표 일제히 빨간불
12월 카드사용액ㆍ할인점 매출↓
소비위축 예상보다 훨씬 심각
단위=%
◆기획재정부 경기 진단 / 소비선행지표줄줄이 악화◆

*수치는 지난해 동기 대비 증감률
*자료=기획재정부
40대 중반의 중견기업 차장인 이영길 씨는 작년 연말 선물을 사지 않았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가족끼리 집에서 케이크를 자른 게 유일한 `이벤트`였다.

"예년에는 초등학생 남매에게 컴퓨터나 게임기를 사줬지만 이번에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6년 된 중고차도 좀 더 타자고 아내와 상의했다"는 게 이씨의 얘기다.

2008년, 결국 `연말경기`는 없었다. 기획재정부가 8일 발표한 1월 경제동향(그린북)에 따르면 작년 12월 전반기 백화점 매출은 4.7%, 할인점 매출은 2.1%나 줄어들었다. 이씨처럼 소비를 줄이고 지출여력을 확보하려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다.

수출과 내수 위축, 일자리 감소, 주식ㆍ부동산시장 침체 등 경제 전반의 침체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이른바 `가계 부문 디레버리징(de-leverlaging)`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8일 첫 워룸 회의에서 "지금부터 실물경기 침체가 본격화할 가능성이 큰 만큼 더욱 치밀하고 선제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문한 것도 이 때문이다.

◆ 적색신호 선명해지는 소비

= 거시경제정책 당국인 기획재정부는 소비를 가늠하는 선행지표로 크게 다섯 가지를 쓴다. △신용카드 국내승인액 △백화점매출 △할인점매출 △국산자동차 내수판매량 △휘발유판매량 등이 그것이다.

이들 통계는 소비재판매 통계가 나오기 전에도 수시로 정책당국자들이 확인할 정도로 내수를 가늠하는 데 정확도가 높다. 흔히 `속보지표`라 불리는 이들은 경기에 대한 일종의 리트머스 시험지인 셈이다.

그런데 작년 11월 이후 이들 지표가 심상치 않다. 원래 내구재 판매는 변동이 심하지만 자동차 판매는 작년 11월 27.7%, 12월 23.8%나 줄었다.

국내 자동차회사들이 연말 모델변경을 대비해 잇따라 판촉행사에 나섰던 것을 떠올리면 `급하지 않은 건 사지 말자`는 소비자들의 위기감이 어느 정도인지 미뤄 짐작할 수 있다. 백화점과 할인점은 사라진 연말 특수에 한숨을 내쉬었다. 세일공세로 작년 11월 판매실적이 잠시 호전되더니 크리스마스와 연말이 낀 작년 12월 매출은 오히려 뒷걸음질쳤다.

재정부 관계자는 "제조업과 수출 등 생산이 위축되면서 미래를 내다보는 소비자들의 심리가 예상보다 빨리 얼어붙었다"며 "모든 경제주체가 몸을 움츠리는 `축소균형`의 전형적인 패턴이 본격화되는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여기에 신용카드 사용액 증가추세 역시 작년 11월 이후 한 자릿수 증가로 떨어졌다.

◆ 투자감소와 재고증가 이어져

= 반도체, 기계류, 운수장비 등 경제 전반의 투자 역시 위축되고 있다. 작년 11월 설비투자는 18%나 줄었고 기계류 19.4%, 운수장비 역시 9.9% 뒷걸음질쳤다.

재정부는 "12월 설비투자는 선행지표인 기계 수주와 기계류 수입 흐름, 설비투자 조정압력 등을 고려할 때 감소세가 지속될 것"이라고 단정했다. 투자가 줄고 소비가 위축되니 재고는 쌓일 수밖에 없다. 작년 10월 17.6%에 달했던 재고증가율은 11월 15.9%로 둔화됐지만 이는 기업이 급하게 감산에 나선 영향이라는 게 정부의 분석이다. 실제로 기업의 공장 평균가동률은 10월 77% 수준에서 11월 68%로 한 달 새 9%포인트나 급락했다.

◆ 1분기 마이너스 걱정되는 일자리

= 투자는 줄고, 재고는 늘고, 소비는 얼어붙은 상황에서 `일자리 전쟁`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올 상반기에는 특히 일자리 수가 줄어드는 가운데 청년층 일자리를 40대 이상 중장년층이 빼앗는 현상이 심화될 전망이다. 지위가 불안한 비정규직의 수난도 걱정된다.

지난해 11월 취업자는 내수부진, 수출둔화 등의 영향으로 전년 같은 달에 비해 7만8000명 증가에 그쳤다. 카드사태 여파로 고용시장이 꽁꽁 얼어붙었던 2003년 12월(4만4000명) 이후 최저기록이다. 올해 성장률이 1~2%에 그친다면 취업자 수는 줄어들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일자리의 연령계층별 이동과 질(質) 저하도 문제다. 최근 20~30대 젊은이들의 일자리를 40대 이상 중장년층이 메우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지난해 11월의 경우 연령대별 일자리 수가 △20~29세 13만3000개 △30~39세 13만2000개 감소한 데 반해 40세 이상에서는 △40~49세 7만5000개 △50~59세 22만6000개 △60세 이상 8만9000개가 각각 늘었다. 김승택 한국노동연구원 사회정책연구본부장은 "경기위축기에는 회사가 망하지 않게 하는 게 신규 일자리 창출보다 더 효과적"이라며 "취약ㆍ저임금 계층 대상 일자리도 적극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진우 기자 / 김태근 기자 / 김은정 기자 / 박용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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